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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살아가지만,
임시방편적인 방법들로는 근본적인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스트레스를 완전히 없앨 수 있는 진정한 방법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1. 기존의 교육방식과 선행의식의 문제점
저는 학교 시절부터 "선행을 해야 착한 사람"이라는 가르침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교회에 들어가서도 교회에서 요구하는 자원봉사 활동, 기부 행사에 꾸준히 참여하며
스스로를 착한 사람이라 여기며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저는 "도대체 누가 이런 선행의 실제적 이익을 얻고 있는 거지?"라고 의문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자원봉사에 참여해도 실제로 도와주는 대상은 알지 못한 채, 교회나 단체의 세력만 점점 커지는 것일 뿐,
주변사람들이 행복해지는 것도 아니고 불우이웃이 아예 없어지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저에게 돌아오는 것은 그저 ‘허무함'이라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피곤하고 지친 상태에서 저의 삶이 허송세월로 느껴졌고, 진정한 선행이 무엇인지 혼란스러워졌습니다.
사회에서 강조하는 선행이 오히려 개개인에게 심리적 부담을 주거나 다른 목적에 의해 이용될 수 있습니다.
교육방침이나 사회적 요구에 따라 이루어지는 선행이 실제로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지,
혹은 진정으로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2. 단어는 달라도 의미는 같다.
- 한 때는, 친구와의 대화 중에 의견 충돌이 많이 있었습니다.
저는 “조언”을 주고 싶었지만, 친구는 이를 “비판”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말은 달랐지만 그 뿌리에는 서로 자기를 우선시하는 사고방식이 깔려 있었고, 이는 갈등을 초래했습니다.
비슷한 상황에서 제가 직장 상사에게도 같은 방식으로 대화할 때, 상사는 이를 "도움"이 아니라 "견제"로 느끼며
서로 관계가 악화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이처럼, 단어가 달라도 서로의 감정이나 의도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은 유사합니다.
겉으로는 도움이 되는 조언이나 비판을 한다고 해도, 상대방이 받아들이는 감정에 따라 관계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대화를 할 때 자신이 중심이 아닌 상대방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화법을 조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3. 변화가 반드시 필요한 이유
저는 주변의 기대에 따라 매번 "괜찮다"라고 말하며, 겉으로는 밝은 척을 했지만, 속으로는 심한 스트레스를 겪고 있었습니다.
저는 자신이 표현하는 방식이 사회에서 요구하는 것에 맞춰져 있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이 방식이 자신을 무너뜨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진정한 평화를 얻기 위해서는 기존의 화법에서 벗어나 자신의 진정한 감정을 표현하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변화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변화는 개인의 내적 평화를 위해 필수적입니다.
기존의 방식을 유지하다 보면 자신을 억누르게 되어 스트레스가 누적될 수밖에 없고,
결국에는 개인의 정신적, 육체적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4. 최상화답술의 필요성과 성경적 근거
학창 시절, 120명의 복학생들이 중강당에 모여 들끓는 분노를 토해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한 사람씩 마이크를 잡고, 국회의원들의 부패와 부도덕함을 고발하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점점 목소리는 격양되어 갔고, 모두가 하나의 결론으로 치닫고 있었습니다.
교문 밖으로 나가 행동에 나서자는 결의가 거의 확정적인 상황이었습니다.
분위기가 고조되는 가운데, 사회를 맡은 학생이 마지막으로 물었습니다.
“혹시 반대 의견이 있는 사람 있나요?” 순간, 강당에는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을 정도의 긴장감이 감돌았습니다.
모두가 흥분된 상태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고, 누구도 손을 들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 조용한 강당 속에서 손을 번쩍 들었습니다. 강당은 갑작스러운 침묵에 휩싸였습니다.
수많은 시선이 제게 쏟아졌고, 사회자가 말했습니다. “반대 이유를 설명해 주세요.
” 저의 머릿속에는 순교자 스데반 집사가 떠오르고 있었고, 마치 마지막 순간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저는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담담히 입을 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교문 밖으로 나가면 최루탄이 터질 겁니다.
우리는 목적이 있어서 나가지만, 아무 관련 없는 길가는 사람들이 이유도 모른 채 최루탄 피해를 입겠죠.”
순간 강당 안에 잔잔한 파문이 일렁이는 듯했습니다. 학생들의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렸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비난하는 국회의원들, 우리와 정말 다를까요?
그들도 대학생 시절에 우리처럼 열정적으로 데모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지금 우리와 무엇이 다릅니까? 우리는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저는 잠시 말을 멈추고 학생들의 표정을 살폈습니다. 그들이 저의 말을 곱씹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덧붙였습니다. “목적이 선하면 방법도 선해야 합니다.” 그 순간, 강당은 깊은 침묵에 빠졌습니다.
격양된 분위기 속에서도 저는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적막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한 학생이 손을 들고 분노 섞인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그럼 우리는 이렇게 행동하는 국회의원들을 보고 가만히 있어야 합니까?”
저는 차분히 답했습니다. “우리의 뜻은 표현하되, 누구도 다치지 않도록 합시다.”
그 말을 끝으로, 학생들은 한참을 고민한 끝에 교내 시위를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저는 교내 시위에 참여해 하루 종일 우리의 목소리를 평화롭게 외쳤고, 전경들은 그저 맞은편에서 우리의 행동을 지켜보았습니다.
그 당시 박종철 사건으로 온 나라가 긴장되어 있던 시기였고, 만약 그때 교문 밖으로 나섰다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아찔합니다.
그날, 누구도 다치지 않고 우리의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그 순간이야말로 저에게 꿀같이 달콤한 기운을 남겼습니다.
제가 항상 묵상하고 있는 성경말씀입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듣는 자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야고보서 1:19)
“말에 실수가 없는 자는 온전한 자라!”(야고보서 3:2)
"때에 맞는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고!"(잠언 15:23)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사과 니라!"(잠언 25:11)
이러한 성경적 가르침은 대화를 할 때 온유하고 진정성 있는 화답을 하도록 일깨워 줍니다.
최상화답술은 바로 이러한 성경적 지혜에 기반하여, 상대의 감정을 존중하고 진정한 이해와 평화를 이끌어내는 방법입니다.
맺음말
현대사회에서 스트레스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새로운 소통 방식과 사고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성경적 지혜에 기반한 최상화답술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진정한 평화와 이해를 촉진하는 확실한 열쇠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이러한 변화를 실천할 때, 스트레스를 줄이고 더 나은 인간관계를 맺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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